섬진강 도깨비마을에서 만난 대형 도깨비 조형물.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웃음을 자아낸다


섬진강에서 돌 하나를 주운 날이었다. 강물은 여전히 세고 넓었다. 어살(돌과 나무로 강을 막아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방식) 하나 놓기 어려운 물살에 마천목 장군은 한동안 강가에 앉아 있었다. 손에 쥔 것은 푸른빛이 도는 작은 돌 하나. 별 의미 없는 돌이라 여겼는데, 그날 밤 꿈에 낯선 존재들이 나타났다. 도깨비들이었다.

그들은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그 돌은 우리의 대장입니다. 제발 꼭 돌려주세요’라고. 다음 날, 장군은 그 돌을 다시 강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도깨비들은 은혜를 갚듯 하룻밤 사이에 어살을 만들어주고 사라졌다… 믿거나 말거나, 곡성 섬진강에는 지금도 그 이야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섬진강과 도깨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이곳에서는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드라이브 하듯 섬진강을 따라 굽이 들어서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건너편 마을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도깨비 천왕상이다. 뿔을 세우고 선 형상은 생각보다 압도적이다. 강 건너편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크고 강렬하다. 길을 찾아 들어가는 여행자들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묻지 않아도 알게 하는 표식이다. 도깨비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섬진강 도깨비마을’은 단순한 테마 공간이 아니다.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살 전설이 내려오는 자리 위에 만들어진, 이야기의 흐름을 잇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도깨비는 만들어진 캐릭터라기보다 원래부터 있었던 존재처럼 느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독대들이다. 평범한 옹기 위에 짧은 문장들이 적혀 있다. “…밋밋하게 살아왔어도 나 이젠 항아리가 아니다”, “내가 멍 때리고 있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죽은 것 같다고 기다려라 난 곧 난다.”(번데기) 누군가 툭 던지고 간 말처럼 읽히는 말들은 동화작가이기도 한 도깨비마을 김성범 촌장의 동시다.


도깨비마을은 도깨비를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마을 곳곳에 흩어놓았다. 숲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는 수백 개의 도깨비 조형물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이 손바닥만 한 것부터 사람 키를 넘는 것까지, 모양도 표정도 제각각이다. 익살스럽고, 엉뚱하고, 때로는 묘하게 인간을 닮았다. 그 수가 숲길과 마을을 합쳐 천 점 가까이 된다는 설명이 과장이 아닌 이유를 걷다 보면 알게 된다. 하나하나 찾다 보면 길은 어느새 끝나고 도깨비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다.

조형물들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김성범 촌장이 써온 도깨비 동화책 속 장면들이 공간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도깨비가 꼼지락 꼼지락’은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작품으로, 책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도깨비들을 마을 곳곳에서 익숙한 얼굴로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