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광주극장. 유난히 환한 얼굴로 극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에코백 등 다양한 굿즈를 구입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온 고이케 메구미씨와 곤도 가나코상이었다. 시간이 촉박해 영화 관람은 못했지만 9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모습 그대로의 극장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은 4·3을 주제로 한 염혜란 주연의 영화 ‘내 이름은’의 포스터를 보고 “꼭 관람하고 싶은 작품”이라며 반가워했다.

한 때 영화 조감독을 했던 가나코씨는 “일본에서는 오래된 극장들이 거의 사라지고 고전 중이라 돌파구를 찾고 있는 상황인데 광주극장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게 너무 멋지다”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광주극장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으로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추진중인 광주극장에는 요즘 영화를 보는 관객 뿐 아니라 전국에서 극장을 둘러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극장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젊은이들의 방문도 크게 늘었다.

지방 소멸 위험이 현실화되면서 각 지자체마다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해 고군부투하고 있다. 지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 오는 7월1일 출범하는 전남광주특별시가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현재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전남은 전국 17개 광역단체중 지방 소멸위험지수(0.329) 전국 1위다. 광주는 2024년 5월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인구 140만명이 무너지면서 위기감에 빠져 있다. 빈 가게가 넘쳐나는 원도심은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오래된 미래-소멸 위기 원도심에 불 밝히다’는 ‘시간’과 ‘스토리’를 품은 지역문화유산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찾아보는 시리즈다. 헤리티지(Heritage)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현재 우리가 누리고 미래 세대에 전달해야 할 ‘살아있는 유산’이다. 지역문화유산은 지역의 고유한 매력을 만들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인구 유입을 유도하며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핵심 자산이기도 하다.

광주와 전남 각 지역에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자산들이 산재해 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원도심의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오래된 가게, 역사의 향기를 만나는 전남의 고택과 선교사 사택, 삶을 버티게 했던 생활의 등 활용자원은 많지만 성공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지원금에만 의지한 채 ‘반짝 사업’을 펼치는 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해녀문화라는 지역의 독특한 마을유산을 중심에 놓고 주민협업으로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 세화마을 ‘질그물협동조합’ 사례는 눈여겨볼만하다. 탄탄한 아이디어와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로 공간의 이야기를 찾고 그 이야기가 사람을 끌어모으면서 관광객 등 관계 인구를 확장시키는 게 필요하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영체계가 고려돼야한다. 개인이 중심이 돼 꾸려가는 방식을 비롯해 기업자본, 시민연대, 주민협동조합, 자치단체 주도 등 다채로운 모델을 통해 생존방식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인구 소멸에 대응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 예산이 투입된 성공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오래된 유산이 관광지와 주민들의 추억장소를 넘어 지역 청소년을 키우는 등 미래 세대와 결합한 사례들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게 절실하다.

“광주·전남의 오래된 문화 자산은 이제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만드는 전략 자산으로 다시 읽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시선을 넘어 외부와 시장의 관점에서 이 자원이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갖는지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죠. 일시적 유명세와 흥행에 집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 번 의미를 얻은 자원이 이후에도 진화하고 다른 형식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개별 사업의 성패보다 자원을 함께 키우고 운영하며 다음 단계로 연결해가는 지역 거버넌스의 성장입니다.”

지역 문화자산을 도시의 콘텐츠와 사업으로 연결해온 이한호 쥬스컴퍼니 대표는 “오래된 자산이 오늘의 감각과 운영의 힘을 만나 다시 도시의 불을 밝힐 때, 비로소 미래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시리즈는 민·관·학계가 함께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를 통해 원도심 문화거점 계획을 수립중인 광주극장에서 시작한다. 이어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을 리모델링한 부산근현대역사관, 제주도 세화마을을 둘러본다.

또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이웃한 골목길 등을 적극 활용한 공주 제민천 사례와 민간기업이 인수해 동양척식회사를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대전 ‘헤레디움’, 오래된 고택을 숙소와 책방, 갤러리로 변신시킨 완주 아원고택을 찾는다.

런던 등 영국 4개 도시가 지역문화유산을 키워가는 현장도 살펴본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리오 시네마는 1970년대 경영난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주민들이 자선단체를 설립해 직접 운영권을 가져 온 ‘주민 주도형 모델’이다. 마침 올해는 재개장 50주년을 맞는 해로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떻게 ‘다음’을 준비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또 원래 자동차 쇼룸과 정비소였던 건물을 영화관과 워크스테이션으로 바꾼 쉐필드의 쇼룸 시네마, 소규모 창고와 상점들이 지역 경제를 견인한 ‘독립문화의 허브거리’ 리버풀 볼드 스트리트, 수산시장이 변신한 맨체스터 그래프트&디자인센터도 찾아간다.